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34

마루야마 겐지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중에서... 이 책은 시골에 칩거하며 소설과 정원일에 몰두하며 살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정원일기 혹은 정원사색 정도로 이해하면 될 수필집니다. 일전에 마루야마 겐지의 가벼운 수필집 을 읽은 터라 이 책도 그정도의 가벼움을 안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별 기대없이 책장을 넘기는 데 곳곳에서 멈칫하게 만든다. 또 일전에 한병철의 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베를린에 살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이 두 손으로 땅을 일구며(체험이 아닌 경험) 목도한 바를 정리 한 수필집이다. 황혼에 접어든 두 지식인이 매우 유사한 경험을 통해 매우 비슷한 어조로 당대의 예술인과 젊은이들에게 가짜 체험이 아닌 고통을 수반한 진짜 경험, 허울만 아름다운 가짜 예술 말고 진짜 아름다움을 피부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한병철의 과 마.. 2023. 9. 20.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에릭 홉스봄, 공산당과 협력한 재즈 23장 민중의 음악, 스윙(445p) 미국의 공산당이 보어슈트 벨트Botscht Belt(미국 뉴욕 주의 캣스킬 산맥 인근의 여름 휴양지)의 적색구역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개최한 캠프 유니티Camp Unity에 연주자들도 참여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연주 도중 사이사이에 한 두 가지 주제를 즉흥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 있었던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일은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성관계가 공개적으로 장려되었다는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의 전통은 매우 굳건해서 시드니 베셰 같은 나이 든 연주자들은 계약이 파기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밴드 멤버들이 백인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캠프 유니티에서조차 금하였다.) 이에 대해 누구나 특별한 인물로 여기고 있.. 2023. 8. 20.
롤랑 바르트 스투디움과 풍크툼, <사물의 소멸> 한병철 바르트는 사진의 두 가지 요소를 구분한다. 첫째 요소인 스투디움studium은 우리가 사진을 들여다 볼 때 등록하는registrieren 광범위한 정보들의 장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애써 돌보지 않는 바람들, 목표 없는 관심, 비밀적인 취향의 장"이다. 수투디움은 사랑하기의 질서가 아니라 좋아하기의 질서에 속한다. 스투디움은 단지 "막연하고 피상적이고 책임감 없는 관심"을 동반할 뿐이다. 시각적 정보는 얼마든지 충격적일 수 있지만 "부상負傷을 일으키지" 않는다. "당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스투디움에는 어떤 격렬함도 없다. 스투디움은 집약성을 산출하지 않는다. 스투디움의 바탕에 깔린 지각은 외연적, 가산적, 누적적이다. 스투디움은 글 읽기다. 여기에는 어떤 마법도 없다. 사진의 둘째 요소를 풍크툼.. 2023. 8. 18.
디디다 추천 음악, 원호 첫 정규앨범 <The Flower Time Machine> 원호 첫 정규앨범 2023년 봄 디디다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된 앨범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거를 타선이 없다. 70년대 사이키델릭을 추구한다는 의지가 커버 디자인에도 묻어난다. LA에서 성행하던 사이키델릭 판들이 떠오른다. 새소년 원년멤버(였던) 강토의 드럼이 뒤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그 위에 원호의 절제된 기타연주와 구수한 톤이 듣는 순간 단번에 추억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실리카겔의 J-pop스러운 기타톤과는 대조적이다. 레트로 트렌드를 먼저 선점한 콩코드와도 사뭇 다르다. 콩코드가 뽕끼와 오부리 사운드를 적극 차용 해 7080 복각에 가까운 음악이라면 원호의 음악은 복각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그 자체에 젖어들게 만든다. 한국대중음악시상에서 콩코드가 상을 받은 바 있었는데 그래서인.. 2023. 6. 20.
피로사회 한병철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 후기 근대의 성과 주체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 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예속적 본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긍정화하고 해방 시켜 프로젝트가 된다. 하지만 주체에서 프로젝트로의 전환으로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자의 의한 강제가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로 대체될 따름이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 수준의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의 착취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 주체는 완전히 타버릴Burnout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 2023. 4. 8.
[카페 디디다 추천 도서] 피트 데이비스 <전념> 책 추천을 해도 그런 바람이 잘 전달되진 않는다. 심지어 음악 한 곡을 추천해도 듣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카페 디디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음악 추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알고 피지컬 앨범을 사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챗GPT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성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피트 데이비스의 은 다음의 구절 때문에 알게 되었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저 글을 어디에선가(아마도 인친의 게시글에서) 보았고 인상깊었기에 읽어야지 했지만 정보가 쉽게 휘발되는 시대를 살다 보니 잊고.. 2023. 3. 9.
아이들은 놀라워라 박노해 사진전 후기 박노해 사진전 소식에 매번 마음이 움직인다. 사진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진 옆에 작은 글씨로 적어놓은 글귀가 더 궁금하였다. 이번에도 서울에 간 길에 들렸다. 1년 상설전시인데 부암동에서 통의동으로 옮긴 라카페 갤러리는 첫 방문이었다. 교통 편의성은 더 좋아졌지만 부암동에 있을 때가 분위기는 더 좋았다. 이미 홍대의 칼디커피에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 상태였지만 다행히 라떼는 마시지 않았기에 라떼를 한 모금하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알록달록 글씨도 아기 손도장도 간결하고 이쁘다. 대부분의 사진은 10여년 전에 찍은 사진들이다. 코로나시국에 다니지 못한 탓이겠다. 아마도 박노해의 새로운 사진들은 2024년에나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사진이 좋았으나 몇장만 옮겨 본다. 안데스 산맥의 높고.. 2023. 1. 17.
토지 5부 1편(16권) 혼백의 귀향 5장 관음탱화 중에서... 토지 5부 1편(16권) 혼백의 귀향 5장 관음탱화 중에서... 길상이 도솔암에서 관음탱화를 완성하고 약동 없이 정체로 살아 온 듯 자신의 삶을 되뇌이며...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순간 혀 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 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 보면 삶의 낭비이.. 2022. 6. 22.
동해시 카페 디디다의 하우스기타에는 국민가수 박창근의 사인이 있다?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포크기타, 이 기타에는 몇몇 소중한 아티스트와의 추억이 담겨있다. 이제는 국민가수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 이름 박창근이다. 그런데 사실 국민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기 전에는 카페에서 박창근의 사인을 본 손님들의 반응은... "박창근이 가수예요?" "박창근이 누군데 기타에다가 이렇게 크게 사인을 했어요?" 이랬다. 그런데 이제는 박창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저 사인을 부러워한다. 특히 고연령층에서 박창근을 더욱 좋아하신다. 그가 1대 국민가수가 된 일은 참 특별하고 귀한 사건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