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부 1편(16권) 혼백의 귀향
5장 관음탱화 중에서...
길상이 도솔암에서 관음탱화를 완성하고 약동 없이 정체로 살아 온 듯 자신의 삶을 되뇌이며...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순간 혀 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 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 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길상은 그러한 변두리로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환국이 길상의 관음탱화를 감상하고 소지감과의 대화중...
“김형은 두 번 다시 탱화를 그리지 못할 거야.”
지감은 앞서 한 말을 놔둔 채 화제를 옮겼다.
“어째 그럴까요.”
“종교적 의식이었으니까.”
“금어는 항상 그 의식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네 부친은 금어가 아닐세. 금어가 탱화를 그리는 것은 예불과 그 성격이 같다 할 수 있으나 자네 부친은 원력을 걸고 한 일이었네. 매번 어찌 원력을 걸겠는가. 또 자네 부친이 환쟁이로 그림을 되풀이 그린다면 그건 세속적 욕심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게야.”
“그렇게 됩니까?”
환국이는 처음으로 웃었다.
“내 식대로 한 말이다.”
“저의 경우는 그럼 욕심이군요.”
“그렇지. 야심작이다 하는 말이 그냥 된 건 아니거든. 예술 자체에 대한 것이든 명리를 위한 것이든 하여간 욕심이 포함된 것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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