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만든 가장 완벽한 진공도 성간(星間) 공간만큼 비어 있지는 않다. 무엇인가가가 있는 곳에 도달할 때 까지는 그렇게 텅 빈 공간이 엄청나게 펼쳐져 있다. 우주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별자리인 프록시마 켄타우루스 삼중성에서도 가장 가까운 알파 켄타우루스까지만 하더라도 4.3광년이나 된다. 천문학에서는 별것 아닌 거리이지만, 달까지의 거리보다는 1억 배나 더 먼 셈이다. 우주선으로 그 별에 가려면 적어도 2만 5천년이 걸리고, 그곳에 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광활화게 텅 빈 별무리 속에 있을 뿐이다. 다음에 있는 시리우스까지 가려면 다시 4.6광년을 더 가야만 한다.
별과 별 사이가 허무하게 텅 비어 있고 끝없이 멀다는 사실을 위의 첫 문장으로 이해가 되었다. "사람이 만든 가장 완벽한 진공도 성간 공간만큼 비어 있지는 않다." 잘 먹여주는 서술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우주의 허무의 역동이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허블우주만원경이 등장하고 과학동아 류의 과학 잡지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시각적으로는 막연한 자극을 주었지만 우주를 잘 알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림도 없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독자로 하여금 우주를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행간이 그렇게 허무 한 줄 몰랐다. 우주세기 온다고 해도 인류가 도달 할 곳은 화성이 유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부 생명, 그 자체- 작은 세상(354p)
오늘날 가장 끔찍하고 통제할 수없는 세균성 질병은 박테리아가 희생자를 속에서부터 먹어치우는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것이다. 내부의 조직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나면 과일 껍질 같은 찌꺼기만 남게된다. 처음에는 피부 발진이나 열처럼 가벼운 증상을 나타내지만, 급격하게 악화된다. 해부를 해보면, 속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유일한 치료방법은 감염된 부위를 잘라내는 극단적 절제 수술 뿐이다. 환자 중에서 70%는 사망하고, 살아남은 경우에도 심한 손상을 입게 된다. 감염의 원인은 보통 폐혈성 인두염 정도의 질병을 일으키는 A형 연쇄상구균이라는 평범한 세균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 가끔씩 일부 세균이 목 안의 점막을 통해서 인체로 들어가 치명적인 파괴현상을 일으킨다. 그런 세균들은 항생제에 대해서도 완벽한 내성을 나타낸다. 미국에서 매년 1,0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지만, 더 악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수막염의 경우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유아의 10%와 청소년의 30%정도는 치명적인 수막염 세균을 가지고 있지만, 목 안에서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10만 명 중의 1명 정도가 세균이 혈관 속으로 침투해서 정말 심한 별을 앓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12시간 안에 사망하기도 한다. 그 속도는 정말 충격적이다.
세균에 대한 가장 좋은 무기인 항생제를 마구 남용하지 않았더라면 사정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약 70% 정도는 가축에게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료에 섞어서 먹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남용 때문에 세균들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도록 진화하게 되었다. 이제는 세균들이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1952년까지는 페니실린이 모든 포도상구균에 대해서 완벽한 효과를 보였다. 그래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자신 있게 "감염성 질병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감염을 완전히 쓸어서 없애버렸다"고 선언을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90%의 균주들은 페니실린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MRSA)이라는 새로운 균주 중의 하나가 병원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 하나만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1997년에 도쿄의 병원에서 그 항생제에도 내성을 가지 세균이 출현했다. 새로운 세균은 몇 달 만에 일본의 병원 여섯 곳으로 퍼졌다. 결국 미생물이 싸움에서 다시 이기기 시작한 것이다.
책 제목이 매우 직관적이다.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생명과 지구 우주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너무 방대한 분야라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관심있는 챕터를 골라 읽다보면 어느새 몇 챕터가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등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우주 부분을 빼고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흥미를 느끼지 못 할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최근 아들이 마이코 플라즈마로 고생해서 세균성 폐렴에 관심이 있어서 였을까 위의 세균 관련 부분은 흥미롭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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