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야 책을 사 볼 생각을 한 게 부끄럽다. 부끄럽다고 책을 안 사고 모르는채 하기는 더욱 힘들었고 4권을 주문했다. 이제야 다 읽어간다. 이제야 한강이라는 사람이 조금 이해가 되고 있다. 후반부에서 잔혹한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려고 천천히 설득력을 쌓아간다. 지옥을 보여주려고 스스로 지옥으로 들어가 지옥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을 유인 할 설득력있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한강이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다. 약장사가 아니란 얘기와 같다.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라 쓰디쓴 이야기를 풀어야만 하는 이야기꾼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영화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려고 거장 영화감독처럼 천천히 빌드업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꼭 영화화 되었으면 좋겠다. 재밌는 영화는 아니겠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어느정도의 흥행은 보장이 되지않을까?
누가 나쁘고 잔인한지 '자국민 학살'로 수치화 하면 해방 전후 일본도 중국도 북한도 아니고 남한이다. 제주 4.3은 조금 알려졌지만 6.25 전후 자국민 학살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대전 골령골 학살처럼 그 실체(시체)가 드러나야 조금 알려질 뿐이다. 한국전쟁 시기 피난과 후퇴를 반복 할 때 국군과 인민군 중 누가 잔인했는지는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민족과 나라는 남한이었다. <굿바이 평양, 2009>을 시작으로 양영희 감독의 영화를 지켜봤었는데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생전에 "너는 남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고 뼈 아프게 말했다. 차라리 북은 못났지만 따듯한 나라였던 것이다. 재일조선인들의 이런 감정을 이해하려면 해방이후 남한의 끊임없는 '자국민 학살'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의 소설이 아니다. 전국을 청소하겠다 던 보도연맹 자국민 학살의 소설이다.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청소하겠다는 노상원 수첩이 드러났고 거기에 동조하는 계엄 동조세력이 창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옥이다.
'독서에 디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한병철, 혁명의 조건이 소거된 삶의 형태는 누구의 추동인가? (0) | 2024.07.04 |
---|---|
빅뱅에서 켄타우루스, DNA에서 공룡 까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0) | 2024.06.27 |
황석영 <철도원 삼대> "일상이라는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1) | 2024.05.19 |
영화 <오펜하이머>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한국인 피해 이야기 (0) | 2024.02.05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켄턴 양과 스티븐스의 가슴 아린 장면 (1) | 2024.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