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를 읽다가 옮기고 싶은 문장이 있어 블로그 창을 열었다.
황석영 선생이 철도원 삼대의 현재 인물 이진오를 굴뚝 위로 올려 고공농성하는 투쟁하는 노동자로 그린 이유가 조금은 원색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아래 문장을 읽고 감탄했다. 마치 철학자처럼 "일상이 그들을 무너뜨렸다." 현대인의 정처없이 비디오미디어를 떠도는 허무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
소설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의 한 구절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코민테른 만주사변의 배경 이야기는 대하소설 토지에서 읽었던 것보다 상세하고 밀도가 높았다.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박경리 선생 보다 황석영 선생의 글이 한 호흡으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위의 옮긴 한 구절이 싸우다 지친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10년 넘는 싸움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이 생각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떠오른다. 수많은 복직투쟁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고공투쟁 하던 김진숙을 올려다 보는 시점은 너무 빤하지만 김진숙의 밥 먹고 똥 싸는 일상을 누가 보듬을 생각이나 했나 말이다.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는 기사를 보고 그제서야 책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 대목에서 위로를 받는다. 아니 치열하게 싸우는 싸웠지만 지금은 아닌 그리고 싸우다 먼저 떠난 그들 모두를 위로한다.
저항하는 노동자의 이야기지만 역사 소설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코민테른 자금 탈취 사건은 공산진영과 사회진영 민족(독립)진영이 떨어진 과실 하나에 오합지졸이 될 만큼 허약했음이 생생하게 느껴져 애달프게 읽혔다. 일제시대의 사상투쟁 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아니다 더 나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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