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를 늦게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지금까지 흥미롭게 본 관객이긴 하지만 열성적인 팬이 아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나는 내심 기대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개봉 이후 사람들의 후기에서 내가 기대하는 장면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욱 흥미를 잃게 되었다.
안다. 많은 영화광들이 <오펜하이머>에 열광했다는 것을...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한해서 몇몇 채널에 나와 평론가 혹은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과 떠든 것도 안다. 그때도 나는 내심 평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해 줄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런 평론가는 없었다. 검색만 하면 나오는 역사 이야기와 양자역학에 관한 얘기를 읽을 뿐이다.
내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기대했던 장면은 '한국인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드러나야 할 원자폭탄의 그림자(진실)이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한다. 이날 원폭투하로 즉사한 사람이 7만명이다. 그 중 한국인이 최소 3만명이다. 고종의 손자 이우도 히로시마에서 군복무 중이었는데 피폭으로 다음날인 8월 7일 사망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졌기 때문에 이 피해는 일본사(史)인가? 피해의 주어에 국가를 두면 그렇지만, 주어에 사람 혹은 민족을 두면 어떤가? 반만년 역사이래 한국인이 일순간 가장 많이 죽은 날인데 이 피해는 한국사가 아닌가?
얼마전 작고하신 서경식 선생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일독을 권한다. 아무튼 원자폭탄 탄생비화를 담은 영화는 성공적이었고, 원자폭탄 탄생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인은 자각 없이 영화에만 열광했다. 그 어떤 영화평론가나 영화 리뷰를 하는 과학자도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영자역학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마치 518 광주 피해를 빼고 전두환을 평가하자는 얘기와 같다. 양자역학의 발전 그로인한 원자폭탄으로 한국인 수만명이 죽었는데 그걸 빼고 어떻게 양자역학 과학공부 하자고 할 수가 있나... 한창 과학에 빠진 유시민도 이 시류에 숟가락을 얹어 양자역학과 칸트를 엮어 강의를 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오펜하이머를 보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감정이입해서 꽤나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내가 울고싶은 지경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난 이동진 영화평론가나 물리학자 김상욱도 한국인 피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자폭탄 탄생의 비화는 잘 설명하지만 그 피해를 누가 입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동진도 김상욱도 유시민이나 유현준도 양자역학의 배경지식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가 본데 정작 원자폭탄으로 누가 얼마나 죽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세계적인 감독이 원자폭탄 관련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에도 내한을 했으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때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원자폭탄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를 언급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좋은 기회를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히로시마 원폭으로 죽은 한국인 3만명, 나가사키 원폭으로 죽은 한국인 1만명은 누가 위로할 것인가?(원폭으로 죽은 조선인 위령비가 현지에 있기는 한데 일본 시민단체에서 만든것이지 대한민국은 관심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화 장면에서 ICBM, 그리고 가공할 위력의 폭탄투하로 멸망하는 지구의 모습이 나온다. 아래의 두 장면을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무 이미지를 따온 것이 아니라면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북한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원자폭탄의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준비과정에서 분명히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 상당수가 한국인임을 인지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폭탄이 터진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 위치는 미국 그것도 맨해튼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구글어스를 돌려봤다.
가공할 위력의 ICBM 폭탄이 투하된 위치는 분명히 미국, 좁히면 뉴욕 맨해든이다. 그걸 암시하는 오펜하이머 대사도 있다. 아무튼 마지막 씬에서 ICBM의 모습을 보여주고 미국이 불바다가 되어 지구전체로 번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누구나 쉽게 예상하듯이 ICBM으로 미국을 겨냥하는 나라는 북한이다. 그러니까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개발과 투하로 인한 최대 피해 당사자 중 하나인 북한을 연상시키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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