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어린 왕자가 늘 같은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기를, 어린 왕자의 방문을 리추얼로 만들기를 바란다. 어린왕자는 리추얼이 뭐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우가 대답한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해주는 무언가, 어던 시간을 다른 시간과 구별해주는 무언가야." 리추얼은 시간을 다뤄 집안에 들이기를 이뤄내는 기술이다. 리추얼은 세계-안에-있음을 집안에-있음으로 만든다. 시간안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사물과 같다. 리추얼은 시간을 구조화함으로써 삶을 안정화 한다. 리추얼은 시간 건축물이다. 시간을 구조화함으로써 리추얼은 시간을 거주 가능하게 만든다. 즉,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만든다. 오늘날 시간은 견고한 짜임새가 없다.
리추얼은 시간을 형식화한다. 삶이 시간이고 인간의 문명은 그 시간을 늘리는 데 한없이 공을 들이고 있다. 물리적 길이의 시간을 늘리는 데 몰두한 현상, 건강염려증과 건강한 몸에 과몰입하는 피트니스사회를 "건강사회"로 한병철은 표현하고 있다. 트렌트 돌턴의 자전적 소설 <우주를 삼킨 소년> 에는 "시간을 빨리 보내려면 바쁘게 살고 시간이 느리게 가게 하려면 세세한 곳에 신경을 쓰라"는 슬림 할리데이의 격언이 나온다.
세세한 곳에 주의를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기는 일이 시간을 복원하고 사랑도 찾고 한다는 걸 우리는 마르셸 프루스트를 통해 이미 알고있다. 순간을 영원처럼 살게 하는 그 마법(시간)을 구조화 하고 안정화 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 리추얼이라고 한병철은 얘기하는 듯 하다.
리추얼은 삶을 구조화하고 안정화합니다. 리추얼은 공동체를 창출하는 가치들과 상징적 질서들을 몸에 정박해요. 리추얼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공동체의 가까움을 몸으로 체험합니다. 반면에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신체화합니다.
한병철은 일본의 하이쿠 문화, 선물 포장지를 대하는 태도 등을 예로 들며 일본을 리추얼의 왕국이라고 표현한다. 사견을 덪붙이자면 일본의 주택에서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문패가 그렇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택에서 문패를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는데 아파트가 국민주택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개인 전원주택에서도 문패가 어느새 사라졌다. 또 매듭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그렇다. 일본에서는 축의금 조의금 등을 주고 받을 때 정해진 리추얼이 있다. 경조사 및 돈의 성격 받는이가 누구냐에 따라 겉봉투 매듭장식의 색과 가닥수가 달라진다. 이 매듭법이 (매듭법의 기원을 자세하게 찾아 본 건 아니지만)일본의 고유전통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한국인에게 하이쿠는 생경하지만 조선시대 문인들이 경치 좋은 정자에서 풍류를 즐길 때 시조를 읊으며 놀 던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명맥이 끊긴 시조가 일본에서는 아직도 전국민이 즐기는 하이쿠로 남아있다. 롤랑 바르트 등 서양철학에 까지 영향을 미친 하이쿠, 얼마전 성시경이 어느 유튭에서 하이쿠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누가누가 하이쿠를 더 잘 하는지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있기가 높다.
우리가 잃어버린 리추얼, 우리(도래인)가 전해 주었을 리추얼,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가 한병철이 말하는 리추얼에 심도있게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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