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다에 도착하면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을 켜고 청소를 시작한다.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고 가게 안은 먼지제거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는다. 15분 정도? 그러면 에스프레소 머신의 온수 온도가 80도에 이른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하루의 첫 라떼를 기다릴 참을성이 없다. 어차피 첫 잔은 주인장은 몫이고 손님이 마실 두 번째 잔 부터는 온전한 온도로 제공된다.
하루의 첫 카페라떼 별거 아니지만 10년 가까이 이 행위가 지속되면 조금씩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예전 어르신들이 내일의 날씨 점을 치듯 이른바 라떼 점을 치는 것이다. 라떼아트를 할 때 미리 그림의 모양을 정하고 할 수도 있지만, 하루의 첫 라떼는 미리 라떼아트를 계획하지 못한다. 카페인이 급한 뇌 상태가 모든 계획을 거부한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아무생각 없이 스티밍을 한다. 그리고 우유가 에스프레소와 만나는 순간 푸싱을 할 지 핸들링을 할 지 결정하고 그대로 이행한다. 푸싱을 하면 몇 개를 할지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핸들링을 하면 어느 두께에서 끊을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한다.
하루의 첫 카페라떼는 누가 보는 것도 다른이가 마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날 그날 모양도 다르고 담는 잔도 다르다. 잔이 다르면 그림이 다르게 그려진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첫 라떼가 나오고 첫 모금 하기 전에 하루의 점을 치듯 라떼를 바라본다.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경계가 뚜렷하게 깔끔한 그림이 나오면 오늘 하루도 손님과의 관계에서 서로 피곤하지 않게 깔끔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모양이 엉망이면 오늘 좀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10년 정도 같은 행위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점을 치듯 하루의 첫 카페라떼를 마시게 되었다. 점을 보는 행위가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게 조선시대 선비라면 누구나 공부해야 했던 사서삼경의 마지막 과목이 역경이었고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도 툭하면 점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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